<책> 어린 왕자 b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본 책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그런 작품이다. 나 또한 어릴 적에 본 책을 읽었지만, 그때와는 달리,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으면,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하여 본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본 작품은 화자가 어릴 적, 맹수를 한 번에 삼키는 보아뱀을 보고 영감을 얻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작품을 보고, 대개 어른들은 그 작품이 ‘모자’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화자는 내부가 보이는, 즉 코끼리를 삼킨 것이 보이는 그림을 보여주고 나면, 어른들은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산수와 지리와 역사와 같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한다. 어른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생산적인가 본다. 화자는 결국 그러한 어른들의 말에 영향을 받아,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꿈을 져버리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직업을 갖게 된다. 비행기를 조종하며, 그 여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 중에, 똑똑한 사람들이 보이면, 항상 자신이 그린, 보아뱀 그림을 보여주며,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대답 또한, 한결같이 ‘모자’였다. 그러나 화자가 비행기 모터의 고장으로 인해, 사막 한 가운데에 표류하게 되었을 적에, 만난, 한 소년, 즉 어린 왕자에게서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과 같이, 그 그림을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저자가 시사하는 바에 대해 나는 이렇게 느낀다. 즉 어른들과 달리, 어린아이들에게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사물을 바라볼 때, 시각의 제한 없이, 다양한 시각, 관점으로 자유롭게 상상하여,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와 달리, 살아오면서, 주입받아온 많은 편견과 그로 인해 생긴 고정관념으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린아이에 비해, 획일적이다. 이런 어린아이의 눈을 가지는 것, 즉 사물을 바라볼 때,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그러한 호기심으로부터, 깊은 관찰이 가능해지고, 그로부터, 깊은 사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목을 읽으면서,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즉 ‘우리와 같은 과학자들은 절대 늙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였다.
화자가 어린 왕자와 만난 이후, 어린 왕자는 자신이 지구로 오게 되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화자에게 말해준다. 그 과정에서, 왕과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지리학자 등을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즉 왕에게서는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욕과 권력욕이 돋보이고, 허영쟁이에게서는 자신을 내면과 달리, 외적으로는 현란하게 꾸며, 내면은 연약한 반면, 외면은 강해보이는, 즉 자신을 외적으로 포장하여, 타인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인정욕구, 그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보인다. 즉 자신의 존재가치가 타인의 인정에 기반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본 작품에서 술꾼은 자신이 술을 계속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행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계속 마신다. 이러한 대목에서 우리 인간들 또한, 명백히 부끄러운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어긋나, 하면 안 되는 행위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그러한 행위들을 한다. 또한 사업가에게서는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가 없이 오로지 ‘돈’을 쫓아, 자신이 정말로 하루하루 생산적으로 살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그렇게 세뇌된 채로, 하루하루 여유시간도 없이 살아간다. '우리가 돈을 왜 버는가?'에 대해 자문해보자. 특히 사업가는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드는 직업 중 하나이며, 또한 기업은 ‘돈’을 벌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고, 성공한 사업가는 돈을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자체에 종속되어, 돈이 목적이 되어 일을 하게 된다. 돈은 그저 자신의 삶이 더 여유롭고, 오로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행위들을 하고, 자신이 경험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돈 자체가 목적인 삶은 돈에 구속되어 살아간다. 즉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계속 돈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삶이 아닌, 돈에 종속된 삶이다. 돈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은 사치스런 물건들을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행의 고리가 계속 끊임없이 쳇바퀴처럼 돌아간다. 그리고 지리학자에게서는 세상을 탐험하지 않는, 즉 직접 경험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남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즉 간접경험만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즉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다. 따라서, 이 유한한 시간 동안 직접 경험의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즉 과거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현자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들, 지혜들을 책을 통해, 듣는 간접경험을 통해, 인간의 유한한 시간을 절약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경험만이 아닌, 직접적으로 자신이 세상을 느끼며, 탐험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즉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조화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어린 왕자는 여러 별들을 지나, 드디어 지구에 도착하게 되어, 사막과 뾰족한 바위와 뾰족한 바위 위에서 치는 메아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중요한 실수로써, 섣부른 일반화에 대해서도 본 책은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즉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여, 사막을 경험하고, 뾰족한 바위를 만나, 그 위에 올라가, 소리를 치니, 자신의 소리가 반향 되어 오는 것을 느낀 어린 왕자는 지구에 대해, “별 이상한 별이 다 있네! 아주 메마르고 아주 날카롭고 아주 각박한 별이야.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말을 해주면 그 말을 되풀이하고…”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 또한,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여김으로써, 쉽게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즉 한 개인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어, 우리가 바라보는 이 지구 내에서의 여러 상호작용들은 각자 자신의 세계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된다. 즉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풍경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별 감흥없는 그저 그런 풍경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어린 왕자는 여우와 뱀을 만나게 되는데, 여우에게서는 ‘길들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즉 길들인다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하는 시간이 존재해야 되고, 길들인 존재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들 또한, 관계를 맺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든, 매우 중요하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며, 또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뱀은 자신이 돌보던 꽃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어린 왕자에게, 그 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즉 1년째 되는 날, 자신이 지구에 도착한 장소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뱀이 그 날, 그 장소에서 어린 왕자를 물어, 죽음에 이르게 하여, 별의 원자적 성분과 다를 바 없는 우리 인간을 ‘별의 성분’으로 분해하여, 자연과 합일됨으로써, 자신의 ‘별’로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러한 대목이 돋보이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저씨도 알 거야. 거긴 너무 멀어. 이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는 없어. 너무 무거워.”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린 낡은 껍데기나 같을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요…..”, 즉 이러한 대목에서 인간의 육체가 인간에게 있어 본질이 아님을, 즉 덧없는 것임을, 즉 인간의 육체는 그저 원자들의 집합체일 뿐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본 작품을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다.